나의 노후는… (Paul Kim)
*콩고 김바울 선교사의 매일 묵상을 편지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창세기 3:19]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동양의 대표적인 현모로 맹자의 어머니를 꼽는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 3번이나 이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맹자의 어머니는 공동묘지 근처로 이사를 갔는데, 맹자가 매일같이 장례 흉내를 내자 시장 근처로 이사를 갔다. 그랬더니 맹자가 매일같이 장사꾼 흉내를 냈다. 그래서 맹자의 어머니는 다시 학교 근처로 이사를 했고, 그제서야 맹자가 공부에 전념했다는 것이다.이렇듯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교육에 나쁜 영향을 주는 환경을 피하여 세 번 집을 옮겼고 이 일을 두고 ‘맹모삼천지교’라고 한다.
[잠언 13: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그런데 그렇게 현명한 맹자의 어머니가 왜 처음부터 바로 학교 옆으로 이사하지 않고, 공동묘지 옆으로, 시장 옆으로 이사를 다녔을까? 맹자의 어머니는 단순히 아들의 공부 때문에 이렇게 이사를 다녔을까?
어느 학자는 새로운 시각으로 맹자의 어머니를 평가했다. 그녀는 남다른 지혜가 있는 여인이다. 맹자의 어머가 생각없이 공동묘지 근처로, 시장 근처로, 학교 근처로 이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맹자에게 제일 먼저 인생의 죽음에 대해서 공부하게 해서 삶의 엄숙함과 진지함을 알게 한 다음, 시장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알게 하고,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인생의 바른 목적을 알게 하고 학교 근처로 이사를 감으로써 공부에 임하도록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이란 맞서 싸워야 할 ‘적’이 아니라 위엄을 갖고 맞이해야 할 ‘삶의 한 부분’이다.
프랑스 절대군주였던 루이 14세(Louis XIV)는 자신 앞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밤에 죽음의 천사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침실 창에 두터운 커튼을 쳐놓기도 했다. 그리고 20세기의 유명한 화가 피카소는 죽음 공포증에 걸려, 죽음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한다.
죽음을 종착역으로 알고 죽음을 끝이라 두려워하며 사는 인생은 이처럼 불안하다.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의 모리 슈워츠(Morris Morrie Schwartz) 교수가 루게릭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사전 장례식을 가진 바 있다. 그는 죽기 전 매주 화요일마다 한 제자와 만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를 묶은 책이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다. 그는 제자에게 말했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진지한 반성이며, 이는 삶에 대해 보다 진실한 자세를 갖게 한다. 살아 있을 때 장례식을 치를 정도의 마음 가짐이라면 남은 시간을 의미있고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죽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고 확률 0.0001%를 위해서 보험을 든다. 하지만 확률 100%인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보험을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외면하고 산다. 능력있는 재무설계사는 지금 이 순간을 보지 말고 10년 뒤, 30년 뒤의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하라고 말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10년, 30년 정도가 아니라 3천만년 뒤, 영원을 내다보면서 살아간다. 누군가 “현재의 삶을 준비하되 영생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지금은 지혜롭지만 영원히 바보다”라고 말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마가복음 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두 가지 생일이 있다. 하나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육신의 생일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날이다. 그에 따라 두 가지의 삶을 누리고 있다.
하나는 생리적인 삶 곧 육체적인 생명이요, 또 하나는 신앙적인 삶 곧 영적인 생명이다.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다라고 생각하고 육적인 생명만을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육신의 생명을 화학적으로 분해하면 약3,000원에 해당하는 값싼 것이며, 호흡이 끊어지면 죽고, 죽고 나면 한줌의 흙으로 변한다. 생의 끝에는 또 다른 나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으며, 나는 천국(영생)이 있기에 지금의 고난도 슬픔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3:15~16]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라면 내가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아마도 곧 다가올 영원의 시간을 준비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설 날을 준비하며 지금 이 시간을 아끼고 더욱더 열심히 순종하며 말씀대로 살도록 노력할것이다. 또한,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가족과 이웃들에게도 역시, 영원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 줄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살아왔다면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출발의 소망이 될것이다. 죽음은 삶의 종착역이 아니라 정거장이며 영원으로 가는 길목이자. 영광의 궁전에 입성하는 영원의 입구이다.
“복음은 노후를 준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아니라 사후를 준비케 하신 십자가로 이루신 대책이다” 그리고 복음이 복음 되기 위해서는 성경을 제대로 선포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죽지 않는 길이 있다. 그 변수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분을 믿으시면 죽음 이후의 생을 보장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나의 노후쯤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좋은 게 좋은 것인데,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이 광고를 포기하면서까지 잘못된 것에 대해 반항을 해서 손해를 봐야 하는걸까?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오늘을 위한 Paul Kim의 기도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기 까지 나를 사랑하시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사망권세를 무너뜨리시고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믿는 자의 인생길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믿고 의지함으로 죽음의 두려움이 물러가고 완전한 평강으로 가득차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할 것이라는 말씀대로 남은 인생이 죽음의 두려움 대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소망으로 가득차게 하옵소서.
사망의 권세로부터 나를 해방시킨 십자가의 능력으로 참된 위로와 평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부활과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맡기신 하루의 시간을 선하고 알차게 사용하며 오늘도 내가 서있는 자리, 콩고선교에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