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불공평을 말하는가! (Paul Kim)
*콩고 김바울 선교사의 매일 묵상을 편지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한 유대인 포도원 주인이 인력 시장에 가서 일꾼들을 뽑았다. 이른 아침인 오전 6시, 오전 9시, 낮 12시, 오후 3시, 오후 5시, 이렇게 다섯 번에 걸쳐서 사람들을 뽑았다. 유대인들의 일하는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오전 6시에 뽑혀서 일을 시작한 사람은 12시간을 일했고, 오후 5시부터 일한 사람은 한 시간만 일한 것이다.
일이 끝난 후 포도원 주인은 고용된 일꾼들에게 품삯을 지불했다. 한 시간 일한 사람부터 지불했는데, 그에게 한 데나리온을 지불했다. 한 시간 일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으니, 새벽부터 12시간을 일한 사람은 더 많은 일당을 받을 것이라 기대를 잔뜩 했다. 그런데, 그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자 그는 화를 냈다. 겨우 1시간 일한 사람이 12시간 일한 자신과 같은 품삯을 받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분배에 대해 정당하게 자기 몫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의롭고 정의로워 보인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은 오히려 그 품꾼을 꾸짖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마태복음 20:13~14]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포도원 주인이 다섯번에 걸쳐 계속 일꾼을 고용하는 이유는 일꾼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종일토록 놀고 있는 자들, 아무도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이 부양해야 할 가족들을 긍휼히 여겨 일꾼들을 계속 고용한 것이다.
1 데나리온은 하루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포도원 주인이 준 품삯은 일꾼이 그 가족과 함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생활비였다. 조금 밖에 일을 하지 않은 품꾼은 오후 5시까지 아무도 쓰지 않은 일꾼이다. 그는 장애인일수도 있고 나이가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다. 그의 가족이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주인은 자신의 것을 지불한 것이다. 오전 6시에 데리고 온 일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약속을 했고, 일한 대가로 약속한 금액을 주었다.
만약 순서를 바꾸어 그들에게 먼저 품삯을 지불했다면.. 그래서 한 시간 일한 사람이 얼마를 받았는지 몰랐다면 그는 전혀 불평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은 왜 늦게 온 사람의 섬김을 먼저 온 섬김과 같이 여겼을까?
늦게 온 사람의 섬김도 일찍 온 사람의 섬김만큼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주님은 나중 섬김과 먼저 섬김 모두를 귀하게 여기신 것이다. 빌리 그레함(Billy Graham)과 빌리 그레함에게 복음을 전해준 그의 어머니, 둘 다 귀하게 여기신다.
오늘 나는 믿음의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한 믿음의 선배들을 귀하게 여겨야 하고. 처음 헌신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나중에 섬김을 이어갈 일꾼들의 헌신도 동등하게 존중 받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둘 다 귀한 사역이다.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포도원의 품꾼을 구하는 주인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만든 자본주의의 원리나 분배의 원리, 노동의 원리를 훨씬 뛰어 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공로로 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는 나라이다.
하나님은 정당하게 나를 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정당하게 나를 대하지 않고 너그럽게 대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천국은 자격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 오직 긍휼,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갈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분배나 정의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한 영혼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주는 정의다. 이 정의는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에서 나온 것이다.
[마태복음 20:15~16]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공로의식은 초심을 변질시킨다. 순수한 마음으로 나라를 세운 개국공신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거나 역사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공로의식 때문이다.
‘누구 덕에 그 자리에 올랐는데…’ ‘내가 없었다면.. 내가 아니었다면..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
“내가 얼마나 많은 섬김과 눈물이 있었는데… “
이런 마음에 혹시 내 안에 있지 않을까?
부족한 나, 죄 많은 나를 구원해 주시고, 주님의 일에 택하셔서 사용해 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로움인가, 이 은혜의식이 식어지면 금방 보상의식으로 바뀌게 되고, 보상의식은 공로 의식에 사로 잡히게 된다.
이것은 정말 위험한 신앙생활이 되며, 주님의 사역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고 선교사역과 교회에 거침이 되며 주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
하나님은 섬김의 양과 무관하게, 나는 존재만으로 귀한 존재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내가 지은 죗값으로 나를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다. 죄를 넘어서 예수님의 명예를 실추시켜도 축복하기 원하며, 죄인인 나를 ‘친구’라고 부르신다. 그것은 바로 주님은 관대하고 나를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콩고선교사로서 오늘 내 안에 있는 공로의식을 버리고 은혜의식이 충만해져서 기쁨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며, 어떠한 환경과 사역이 주어져도 믿음으로 순종하고, 감사하는 건강한 신앙생활과 사역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오늘을 위한 Paul Kim의 기도”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공로의식이 만연한 인생의 광야에서 ‘새판짜기’의 은혜를 베풀어 주사, 날마다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간구하는 니의 평생의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공로를 드러내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고 칭찬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고 실망하고 비교하였던 나를 용서하시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바라보고 주님 만이 나의 힘이요 능력이요 참소망이심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내게 있는 공로의식,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섭섭함, 영적 교만이 사라지게 하시고 오직 주님께 받은 은혜로 기쁨 충만하여 나보다 더 훌륭한 지체들에게 박수쳐주며 주님께 헌신과 감사로 건강한 사역의 삶이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